인간에 대한 곧은 이해를 위한 지침서(2003)

조회 수 3095 추천 수 0 2011.06.29 23:30:47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스타킹을 신다 문득 생각난 것이! 생각난 것이! 그녀는 새침한 입술로 떠오르지않아를 언급하곤 열심히 타이핑에 열중했다.
계절탓인지 파운데이션이 말린 정도로 건조해졌다. 그녀는 워낙 건조했기 때문에 작은 물병과 바디미스트, 훼이셜미스트, 그리고 딸기향 립밤을 항상 휴대했다.
종아리엔 하얀 각질이 일어 보기 싫을까봐 열심히 스크럽을 하였다. 콘택트렌즈를 붙여 놓은 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공눈물을 수시로 부어주어야 했다. 야근을 하는 날이면 간편한 마스크팩을 얼굴에 얹어놓아야 했다. 그녀는 민감하기까지 했다.
안쓰던 화장품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거울을 볼 때마다 속상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것을 접하기 전엔 알레르기 테스트가 100%완료된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때때로 건조한 손과 발엔 크림을 담뿍바르곤 랩을 감아두어야 했다.
립밤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만큼 입술이 터버렸을 땐 바세린을 사용했다.
유난히 분홍색과 레이스에 열광했던 그녀에게 어울리는 머리끈을 찾아냈을 때 그녀는 안타깝게도 휘휘날리는 짧은 머리로 총총 뛰어오고 있었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눈과의 교접을 원했을 때 그녀는 한마디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말이 무엇이었는지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다. 그녀 특유의 억양과 섞여야만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는데다가 그런 말을 구사할 수있는건 아직까진 그녀뿐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깔끔했지만 계획성이 없었다. 분홍색 립스틱을 3개나 사고도-내가 보기엔 똑같았는데 말이다.-또 다른 분홍색 립스틱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그녀의 눈은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그녀의 온몸은 물론, 심지어 눈동자까지 분홍색으로 보일만큼 그녀는 좀더 멋진 립스틱 고르는 일에 열중했다. 색감과 촉감, 그리고 그녀의 건조한 입술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줄 수 있는, 그러니까, Science과 organic모두 최상위 권에 있는 비교적 까다로운 조건이 성립해야만 했다.
그녀는 더위를 아주 잘탔다. 너무나도 싫어했다, 더위를. 그러나 그녀는 피부를 건조하게 하는 에어컨을 틀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조직생활에서 소수의 의견은 무시된 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남에게 피해주는 일을 그녀는 끔찍이도 싫어했다. 겨울엔 날씨 때문에 여름엔 에어컨 때문에 그녀의 피부는 점점 건조해져갔다.
그녀는 눈물또한 많았다. 내가 너는 건조해서 더 이상의 수분을 배출해선 위험하다고 분명히 주의를 주었지만 그녀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건 같은 눈으로 나에게 안겼다.
그녀와 처음 섹스를 하던 날, 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몸에 건조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녀는 날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이기는커녕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난 힘을 빼 라고 크게 소리질렀고 그녀는 끝내 눈물을 터트렸다. 내가 그녀를 토닥이며 그녀가 좋아하는 머리쓰다듬기를 하였지만 그녀의 눈물은 도무지 멈추질 않았다.
그녀의 가슴은 아주 조그만했다. 내 손으로 잡기에도 너무 조그맸다. 앙증맞은 그녀의 가슴을 만져보았다. 그녀의 그곳도 열심히 어루만졌다. 하지만 그녀는 날 받아들이지 않을 기세였다. 처음이라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13번째 시도에도 그녀가 날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난 그녀를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난 육체적인 사랑 또한 무시할 수 없었고 그녀는 항상 그 통통한 입술로 애원하듯 말했다. 꼭 해 야 해?

그녀를 처음 만난 겻은 6년하고도 11개월 전이다. 그날 그녀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생각없이 난 그녀를 지나쳤다. 그 순간 아야,하는 소리가 들렸고 내가 고개를 돌린 그곳엔 그녀가 꼬꾸라져 있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속에서부터 끌어나오는 웃음을 참지못했다. 그녀는 화를 내더니 벌떡 일어나 걸으려 했다. 그녀의 인대는 파열되어 있는 상태였고 그녀는 당연히 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갔다. 내가 한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녀와 그렇게 만난 뒤로 연락을 한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다리가 완치되었을 시기 쯔음해서 내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그녀는 아주 사무적인 말투로 밥살께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죠, 라고 말했다. 그녀와 나는 밥을 먹으러 갔다. 그게 문제였다. 그녀의 손놀림은 아주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었다. 그 때 그녀가 손을 사용한 적은 머리를 긁고 이를 쑤시고 젓가락을 쥐고 물컵을 잡는 것들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지만 그녀의 손놀림은 날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녀에게 꼭 따져야만 할 것들중 하나가 그것이다. 그런 인간적인 행동에 쓰인 손놀림이 비교적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내 가슴을 뒤집어 놓았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녀의 다리는 길었지만 두꺼웠다. 결코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체중이 줄어들기는 원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종아리가 반쪽이 되기는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두 달간 하루 한끼만 먹고 생활했다. 어쩌면 그녀가 건조해진-더욱 말이다- 원인작용을 톡톡히 한 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을 두려워했고 물 한컵 마시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 끼 먹는 것조차 밥 한 숟가락에 불과했다. 그녀는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눈 밑은 까매졌고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더 좋은 컨실러를 사들였고 그 부작용으로 얇은 눈두덩이엔 접촉성 피부염이 재발하였다. 화장은 당분간 하지 말라고 피부과 의사는 경고했지만 그녀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의 눈두덩이는 좁쌀같은 피부염이 번져갔고 진물이 나서 세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피부과 치료를 열심히 다녔다. 자존심 강한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매우 인식했기 때문에 피부과를 갈 때를 제외하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집앞에서 전화를 하고 문을 두드려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난 그녀가 다이어트 중 인 데다가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점으로 보아 그녀의 냉장고엔 먹을 만한 음식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추측해보았다. 그래서 그녀에게맛있는 것을 먹이고자 그녀의 아파트 문 앞에서 그녀가 피부과에 갈만한 시간대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대문을 열었다가 나를 보고는 매우 놀란 표정으로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잠시 후 비명이 들렸다. 물론 그녀의 아파트가 2층이라지만 그 것을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녀는-처음 만남에서 증명하다시피- 운동신경이 매우 둔하고 소뇌가 없는게 아닐지 의심이 갈 정도로 균형감각이 없었다.
난 그렇게 까지 무모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그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곳에서 뛰어내리면서 까지 피부과에 가야했으며 나를 피해야만 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녀는 사진 찍히는 일을 매우 좋아했다. 그녀는 상당한 미모는 아니었지만 여느 남자라면 호감을 가질만한 상큼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분홍색 치크컬러를 바르고 웃을 때면 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나 예뻤다. 그녀를 꽈악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그녀는 귀여웠다.
작은 편지 한 장에 감동을 하였고 이성적임과 동시에 충분히 감성적이었다. 미술작품을 감상함과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말할 줄도 알았고, 형편없는 음악회에 가서는 폭언을 퍼부을줄도 알았다.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사랑했으며 고양이의 순간적인 도발성을 사랑했다. 그녀는 베스트셀러나 남들이 다들 하는 짓을 싫어했다. 한수산의 새로 나온 산문집도, 다들 좋아하는 환타지소설도, 줏대 없는 행동을 뭐든지 싫어했다.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남들이 다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조차 그 사실을 부정하려 할 땐 그 땐, 그녀는 상당히 애처로워보였다. 사소한 것조차 신경쓰는 그녀와 함께 다니면 피곤한 점이 많았다. 그녀는 약간의 결벽증 또한 있어서 면도를 하지않고 다니는 것은 나에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코털이 삐져나온 것을 보면 족집게로 뽑아버리는 그녀의 특이한 성격 때문에 난 항상 작은 가위를 가지고 다녀야했다.
그녀는 아프타성 구내염에 아주 잘 걸렸다. 심할 때는 잇몸에 5개가 다닥다닥 붙어 생기기도 했다. 그녀가 가장 심하게 아프타성구내염을 앓았을 때는 목구멍에 그것이 생겼을 때였다. 오렌지주스를 좋아하는 그녀는 오랫동안 오렌지주스를 먹을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칠리소스 새우무침도 먹을 수가 없었다. 비빔냉면도! 초밥도! 김치볶음밥도!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물한모금조차 제대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붙잡고 울었다. 난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매일 그녀와 이비인후과에 함께 가고 치료를 받는 내내 기다리는 것.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그녀가 완치되었을 때 한동안 그녀는 신맛에 적응 할 수가 없었다. 오렌지주스가 역겹다며 뱉어내었다. 해파리냉채도 식초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녀의 식성이, 즉, 혀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1주일 후였다. 난, 그녀가 식성마저 까다로워 질까봐 사실 두려워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한번은 그녀가 지독한 초코홀릭에 빠져버린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아침먹기 전부터 초콜렛을 입에 까넣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울다웃다 초콜렛을 먹어댔고 그녀의 방은 온통 초콜렛껍질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녀의 입주위는 마치 번진 마스카라자국처럼 보였다. 그녀는 초콜렛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 먹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소리를 질렀다. 빨리사와! 더! 빨리 더 사오란말야!
그녀는 마치 성난 야수처럼 보였다. 그녀가 안정을 찾기위해 평상시에 했던 것처럼 아로마오일을 피워보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상태가 점점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난 그래서 결국 그녀에게 대량의 초콜렛을 수시로 공급하는 쪽을 택했다.
그녀가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군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대, 카카오빈 100알이면 노예를 살 수있을 정도로 카카오빈은 귀중했다고 한다.)
그녀가 정확히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정확히 3일이 걸렸다.
생각보다 오래걸리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었다. 그녀는 정말 대단했다.
3일만에 5kg을 찌웠다 뺀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잠이 많았다. 물론 그것은 개개인의 취향이고 행복을 얻는 자신만의 노하우 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녀가 잠자는 일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최대한 깨어 있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 전날 밤에 물을 많이 마셔서 화장실에 가고 싶게 한다던가 하는 극단적인 방법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정확히 하루 9시간의 수면시간을 완수해야만 정상적인 생활을 해낼 수있었다. 야근을 하는 날이나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 다음날에는 꼭 그 시간만큼 더 잠자야 했다.
그녀가 매우 사랑했던 고양이가 죽었을 때 그녀는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다.
노란 고양이는 회색눈동자로 그녀에게 괴로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아주 센 힘으로 그녀의 손을 깨물고는 죽었다. 그녀는 잠을 자지 못했던 일주일의 수면시간만큼, 그러니까 63시간 만큼 잠을 더 잤다. 그러니까 정확히 81시간 58분동안 연속해서 잠을 잤다.
사실이다. 그녀는 81시간 58분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잤다.
그녀의 건강을 염려한 내가 그녀를 내과에 데려가서 포도당주사액을 그녀의 손목에 꽂아주었다. 차가운 전해질 때문에 혈관이 짜릿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어제 난 여느때와 같이 그녀에게 놀러갔다. 오후 7시. 그녀는 항상 TV를 보며 과일 깎아먹고 있을 때였다.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딩동.
대답이 없다. 딩동. 딩. 동
대답이 없다. 쾅쾅쾅. 쾅 쾅. 난 결국 그녀가 만일을 대비해 만들어 준 보조키로 그녀의 문을 열었다.
그녀가 없었다.
12시까지 기다렸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녀가 나간 흔적은 아무곳에도 없었다. 그녀가 매일 아침먹기위해 갈아놓는 오렌지주스도 넉넉히 있었다. 그녀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놓은 상태였고 회사에서는 그녀가 퇴근한지 오래라는 말뿐이었다.
무얼하고 있는 거지? 난 점점 조급해져갔다. 어디있지? 어디있는 거지?
그녀는 가끔 말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처음엔 내일쯤이면 돌아올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벌써 오후 9시 18분이 지나가고 있다.
어디있는거지? 난 불안해서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특별히 남기지도 않았다.
그녀에게 또 다른 남자. 그러니까 애인이 있다해도 난 전혀 뭐라 반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시간동안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 대한 별 특별한 감정이 있는 듯 보이진않았다.
그녀가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란 안정적인 생각은 내가 만들어낸 망상에 불과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지도 몰랐다.
그저 가끔 이곳에 휴식을 취하러 오는 것일지도.
그녀는 자주 콘택트렌즈를 잃어버리고는-그것도 한쪽만- 다른 한쪽만을 착용하고는 회사에 출근했다가 나에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하곤 했다.
출근은 혼자 힘으로 가능했는데 퇴근은 불가능하다는 그녀의 습성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출근만을 전담한 또 다른 남자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어디있는걸까?
그녀는 사라졌던날로부터 정확히 3일후, 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것이, 내가 본 물체가 정확히 그녀인지는 말할 순 없지만 마치 그녀같았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작은 토트백을 들고 있지도 물병을 따로 손에 들고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더위를 심하게 타는 그녀가 한여름에 긴옷차림으로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럼 그녀는 어디에 있는걸까? 내가 알고 있는 그.녀. 는 과연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걸까?
내가 알고 있던 그녀가 그녀가 맞는 걸까?
아, 난 또 이만 그녀를 찾아보러 가야겠다.
당신이 만약 그녀같은 그녀를 보게 된다면 얌전히 이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란다.
더불어 내 연락처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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