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실연(2005)

조회 수 3464 추천 수 0 2011.06.29 23:41:14
눈을 감고 있는 그녀에게 체중계가 속삭인다. 조금 가볍네. 이제 환청까지 들린다. 배가 고파서 일까. 정말 엄마 말대로 이제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볼까. 지난 몇 달 동안 그 누구와의 접촉도 거부하며 다이어트에 매달려온 그녀였다. 다이어트에 매달리기 전 그녀는 그의 마음에 매달려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던 그녀였다. 그는 술에 매달렸고 그녀는 그의 마음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를 잡기 위해선 술을 마셔야 했다. 그가 떠나간 이상 더 이상 술을 마실 필요가 없어졌다. 어쩌면 그녀에게 그보다 무거웠던 것은 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술이 그녀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녀는 매번 변기에 앉아 할당량의 오줌을 뿜어냈다. 아랫배가 싸했다. 화장실은 또 가야만 했고 그 때마다 일렬로 된 의자의 안쪽에 앉아있던 그녀를 내보내기위해 그의 친구들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만했다.
화장실에 가기위해 그녀가 네 번째 엉덩이를 들자 그의 친구들이 말했다. “우리 이만 가야될 거 같다. 시간도 너무 늦었고 다음에 보자.”
그녀는 화장실 변기뚜껑을 닫고 앉아 숨죽여 울었다. 그래, 통로가 좁은 거야. 그의 마음도 그녀가 비집고 들어가기엔 너무 좁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너무나 비대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터지지 않았다.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입술을 그의 얼굴에 가져다 대려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녀가 선물했던 귀걸이가 그 남자의 왼쪽 귀에서 여전히 반짝거렸다. 귀걸이도 그 남자도 그렇게 고개를 돌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교통카드를 찍은 개찰구는 한사람만 통과할 수 있었다.


그 날 번호 키를 누르고 집에 들어서자 엄마가 물었다. “ 너 차였지?” 엄마는 그녀에게 다가와서 배를 힘껏 꼬집으며 말했다. “어떤 남자가 여자랑 연애하고 싶지, 살이랑 연애하고 싶겠냐. 어휴.” 그녀는 티셔츠를 쭉 잡아당겨서 드러난 배를 겨우 가렸다.
동생은 호일을 감은 닭다리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입으로 가져가려했다. 동생은 음식이 입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입을 벌린다. 입을 한껏 벌려 그것을 맞이한다. “너도 좀 먹을래?” 동생의 시선은 텔레비에 고정되어있다. 누가 말한 거지? “방금 네가 말했어?” 동생은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동생은 닭다리에 감았던 호일을 벗겨내 그 다음 닭다리를 감싼다. 동생의 열손가락엔 이미 양념이 흠뻑 묻어있다.
“너 같은 애한테 먹히려고 태어난 내가 아니야. 어서 방으로 들어가.”
죽은 닭도 살은 닭도 어쨌든 닭은 닭이다.

“내가 너 찾느라 커피숍을 다 둘렀는데도 겨우 찾았지 뭐야. 이렇게 달라지니까 누가 알아보겠니. 그나저나 그 때 코 수술 안하길 잘했다. 돈 굳었다, 얘.”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친구의 입에서는 한달음에 말이 터져 나왔다. 친구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의 입은 말한다.“그 사람은, 잘, 지내?” 그녀의 친구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몰라서 묻는 거야? 걔 여자 생겼어. 하긴 네가 그렇게 오래 연락을 끊고 살았으니 알 방법이 없었겠다.”
탁자가 날아갈 것만 같다. 그녀는 탁자를 두 손으로 붙잡는다. “어떤 여자? 잤대?”
친구가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웃는다. 벌린 입 안의 어둠 속에 반짝이는 여러 개의 금니가 돋보인다. 컵에 있던 물을 전부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나 좀 그만 웃겨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아, 걔 근데 뚱뚱한 여자 좋아하나봐, 저번 모임에 데리고 나왔는데 볼만하던데. 너도 그랬고, 뚱뚱한 여자 처녀 따먹기가 취미라도 되나.” 목구멍에서 차마 빠져나가지 못한 말들이 자꾸만 그녀의 목에서 꿈틀거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손가락이 전화기의 번호판을 두드린다.
"여기 A아파트 104혼데요. 후라이드반 양념반이요. 빨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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