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사랑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쿨하다고 믿었던 자아의 분열이 진정한 연애의 묘미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는 귀찮다고 여겨질 만큼 질척댔던 여자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나는 그렇게 단면만을 드러낸 채로 평가받고 있는 지도 모른다. 연애를 하게 되면 어떤 한쪽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또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라고 어느 한쪽만을 나무라기에 연애는 너무나 복잡한 게임이다.

토마스는 데레사를 사랑하고 그녀와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과도 성적인 관계를 갖는다. 그는 이 관계를 ‘에로틱한 우정’이라 칭한다. 에로틱한 우정의 상대는 특정인이 되기도 하고 불특정 다수가 되기도 한다. 데레사는 이런 토마스를 사랑하지만 100퍼센트 이해하지는 못한다. 과연 토마스는 나쁜 놈일까. 사랑이라는 것은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관계다. 연인이라는 관계는 일방적이진 않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토마스의 다자성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레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토마스는 데레사에게 ‘나쁜 놈’이 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하기 바라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사랑이라는 관계는 복잡하다. 다른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말라며 나 말고 다른 여자랑 섹스하면 심지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과거의 여자와 문자 메시지라도 주고받은 것이 들키는 날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된다. 그게 아니라면 남자가 말야 그럴 수도 있지 라며 있지도 않은 가오를 잡아야한다. 관음증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의 편지를 뒤지고 절망한다.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아픔을 남긴다.

데레사는 토마스의 다자성 사랑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로 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의 ‘제 2의 자아’가 되기로 나선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이다. 그가 다른 여자의 몸을 더듬는 것은 모욕적이지만 한편으로 매우 자극적이다. 데레사는 자신의 모욕을 자극으로 승화시키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사랑에 있어서, 섹스에 있어서 폭력이란 자극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일부다처제성 생활을 이해하기 원하는 토마스는 자극이다. 그런 토마스의 또 다른 여자였던 사비나가 ‘사랑하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 이죠’ 라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 프란츠를 떠난 것도 그 때문이다. ‘벗어’라고 명령할 수 있는 토마스는 어쩌면 데레사만을 사랑하기엔 너무 아까운 사내다.

사랑은 영혼의 속삭임이라는데 몸까지도 탄압해야 옳은 것일까. 그렇게 ‘죽여주는’ 토마스라면 그냥 믿고 보내주는 게 맞지 않을까. 사랑한다는데 그까짓 고추 몇 번 딴 데 가서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하지만 토마스의 머리에서 나는 여자 성기 냄새는 데레사에게 괴로움만을 안긴다. 결국 데레사는 멀리 꺼질 것이다 육체여 라며 울부짓는다.

사랑은 가볍다. 깃털만큼의 가치도 없다. 날 떠나면 죽여 버릴 거라며 불타는 열정에 몸을 떨던 그녀도 헤어지면 그저 남남이다. 도덕적인 관념이 없는 한 어떤 남자와도 옷을 벗고 섹스를 할 수 있다.

일대일 사랑이라는 굴레(라고 표현하겠다)에서 멀리갈 수 있는 사람과 멀리갈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멀리갈 수 있다고 해서 상대방의 멀리감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 끼리끼리 만나고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뭐랬어. 사랑은 가벼운 거야’ 라고 노래 부르는 토마스, 정조로써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보이려는 데레사, 유부남인 토마스와 관계를 지속하는 사비나. 그 누구도 잘 못하지 않았다.

사랑은 그리고 연애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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