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데 없는 상처들의 부딪힘_언니네방2를 읽고(2008)

조회 수 3588 추천 수 0 2011.06.29 23:44:18
그저 편하게 살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며 사는 것, 그것이 내가 욕심 부리는 유일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사랑을 하는 것일 뿐인데 왜 그런 사람이 좋으냐고 집요하게 묻는 사람도 있었고, ‘네가 아직 어려서 세상을 모르는 것’이라며 ‘좋을 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내가 내 사랑에 대해 변명을 해야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을 이렇기 때문에 사랑을 하니 이해를 해주십시오.’라고 말해야 되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졌고 내 안의 많은 내가 생겨났다. 오기를 부리듯 사랑을 해야 했고 내 스스로 떳떳해지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사랑을 해야만 했다. 내 사랑이 진짜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싶었다.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은 왜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냐며 좀 편하게 살라고 했지만 그들이 나에게 그런 것들에 대한 변명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편안해질 것 같았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나를 항상 외롭고 슬프게 했다. 별난 아이 취급을 받는 것도 싫었다.
나보다 두세살 많은 그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는 것에 대해 남자들은 마치 그것이 진정한 남성성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 떳떳한 것에 비해 여성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해 말했고 (성매매를 옹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절대 아니다.)그녀는 어머 여자가 그런 데를 어떻게 가, 남자는 어쩔 수 없다 던대? 라고 말했다.
그녀는 분명 잘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녀 또한 사회의 수혜를 받고 살아온 나와 같은 사람이니 자신도 당연하다 여기는 당연하지 못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곳의 정면보기를 불편해한다. 제도권 안에서 여성의 받는 불평등이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 ‘난 잘 모르겠는데?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좋은 게 좋은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정면보기를 불편해하고 불편한 점을 이야기하는 이들을 불편해하는 그녀들을 나무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어쩌면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같이 말하지 못함을 답답해하는 그녀들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언니네 방은 그런 그녀들에게도 나와 같이 입을 열고 싶어 하는 그녀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다. 다른 이에게 상처주지 않는 방법과 나 스스로 나를 다독일 수 있는 방법이 이곳에 있다. 잊기를 강요당하고 입 다물기를 강요받았던 그녀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서로를 괜찮다고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 노처녀히스테리라는 말은 있지만 노총각히스테리라는 말은 없다. 비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비혼 여성은 성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 스스로는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더라도 주변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비혼 여성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터부시된다. 부권제의 독점적 가족에 있어서의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다. 남성은 여성이 가정 안에서 혹은 사회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를 바라고 그들의 성의 역할이 생식적인 것에 국한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여성을 지독히 경계하며 동시에 규제해왔다. 성에 대한 생각과 말의 해방이란 행위에 대한 해방을 뜻하기도 한다. 남성은 그러한 상황을 경계하며 여성은 성스러움을 강조 혹은 강요함과 동시에 ‘여성은 스스로 성욕을 제어할 수 있지만(해야 하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그러고 싶지 않다).’라는 논리를 펼쳐 여성들의 몸을 억압하면서 남성들의 몸에게는 자유를 주었다.
아직도 여성이 -다른 신체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말하면서도- ‘내 보지는 어떻게 생겼다’라고 대화를 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것에 반해 남자들은 ‘고추가 몇 센티’라거나 ‘오줌줄기가 어디까지 나간다.’라는 식의 대화를 나눈다. 한 달에 한번 생리를 함으로써 존재를 말하고 있음에도(생리를 안 하는 여성도 물론 있다.) 많은 여성들이 첫 경험을 하기 전까지 자신의 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분명 유아기에도 성욕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많은 여성들이 2차 성징을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겪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를(혹은 척 하기를) 강요받고 있다. 여성주의저널 일다 박희정씨의 글에서처럼 음경은 알고 음순은 모르는 아이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다. 그만큼 여성의 성기는 금기시되고 심지어는 ‘자궁’으로만 표현된다.
언니네 방의 한 ‘언니’는 자신이 어린 시절 자위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엄마의 반응을 털어놓는다. 너 자꾸 그런 거 하면 나중에 임신 못해! 어린 딸의 자위를 무조건 막고 싶었을 당시 그녀의 엄마와 어린 딸이 느꼈을 공포에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또한 베티도슨의 <네 방에 아마존을 키워라>라는 책에서 “넌 네 보지를 본적이 있니?”라는 질문을 받은 뒤 며칠을 두려워하다가 용기를 내어 거울로 자신의 보지를 살폈을 때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이곳에 적었다. 그녀가 자신의 몸을 긍정함으로써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며 이토록 솔직한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언니네 방의 힘이 아닐까싶다.
분명히 이건 아닌데 라고 느끼고는 있음에도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입을 열면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들이 왜곡될까봐 두렵기도 했고 사실 무엇이 정확히 잘못된 것인지 잘 모르기도 했다. 다르게 생각하는 나를 많은 이들은 틀리다고 평가했고 궤변론자라며 혹은 너무 진지하다며 비꼬았다. 나와 같은 이들이 세상엔 존재한다는 것을 심지어 많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직접 보여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라도 위안 받고 싶었다.
스스로를 꺼내 보이는 ‘언니’들과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 따돌림 당했던 기억을 꺼낼 수 있었고 누군가를 증오했던 기억도 내입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픈 기억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모든 이와 화합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잘못된 것이라고 탓하지는 않게 되었다.
누구나 아픈 기억이 있다.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품고 있다고 해서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팠던 나의 열세살과 마주하게 된다면 난 아마 이 책을 품에 안겨주지 않을까싶다.
그녀들은 곧 나이고 내가 곧 그녀들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비밀에 대해 안다는 것은 어쩌면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이 있음에도 잘 모르는 그녀들의 비밀을 아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관계 맺기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비밀에 대한 관음증과 거부감이 공존한다는 아이러니에 내 스스로가 싫어진 적도 있었다. 그리고 두터운 벽을 쌓기 시작했다. 상처의 해결방법을 몰라서 상처들로부터 도망쳤음을 고백하는 ‘언니’의 고백에 완벽한 해결방법이 아닌 비밀을 공유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를 내 주변 그녀들이 떠올랐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어주는 귀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남자문제에 대해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친구에게 네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며 큰소리로 혼을 냈다. 그녀가 그저 다정하게 들어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했다. 누군가의 말을 듣기 부담스러워함에도 내 짐은 누군가에게 덜어놓고 싶었다.
사랑은 그리고 사람은 정리될 수도 일반화 될 수도 없기에 누군가에게 강요를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은 각기의 생활방식이 있고 남자를 사랑할 수도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으며 섹스를 할 수도 안할 수도 있고 결혼을 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
이 책이 프롤로그에서 말했듯 여자들의 삶은 언제나 선택을 강요당하지만 그 사이에는 수많은 선택들이 존재한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이 혼자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출산을 못하거나 안 해도 아이는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넘치는 이해심을 남에게 상처 입히는 것에까지 적용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이분법에 근거한 선택을 강요받는 많은 여성들이 서로를 생채기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나도 언니들이 세상에게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처럼 내 아픈 기억으로 또 다른 나를 보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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